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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경의 기원,
장백산의 력사문화연구에 중요한 실물증거 제공
4월 8일,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쳐 길림성 장백산 서남비탈 만강에서 발견한 5점의 천공석기는 신석기시기의 ‘장백산석경(石磬)’임이 확인되였고 돈화시 강자유적지(岗子遗址)에서 발견한 석경도 전문가들로부터 확인되였다. 이는 동북 장백산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오래 된 악기로서 장백산 력사,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한다.
4월 8일, 길림대학, 길림성문물감정위원회, 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의 전문가, 학자들이 참가한 감정회의가 장춘에서 소집되였다. 길림대학변강고고중심 교수, 중국고고학회 구석기전문위원회 부주임 진전가, 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회장, 길림성인민정부 문화력사연구관 연구원 장복유, 길림성문물감정위원회 주임위원 조령실연구원 등이 감정회의에 참석했다.
‘장백산석경’1-5호(오른쪽부터 왼쪽) / 장복유 찍음우리 나라 구석기고고 권위자 진전가교수를 조장으로 하는 전문가 소조는 5점의 천공석기가 석경임을 인정, 각기‘장백산석경’1-5호로 이름을 달았다. 그중‘장백산석경’1호의 가장 긴 부분이 35센치메터, 너비 21센치메터이며 구멍 부분의 가장 두꺼운 부분은 9센치메터, 구경 길이는 7센치메터, 너비는 5센치메터, 깊이 4센치메터이며 무게는 7.75킬로그람이다. 구조, 형태로부터 음색에 이르기까지 모두 석경의 형태와 두드리면 생기는 듣기 좋은 공명의 기본특징에 부합되여 장백산지역의 조기 인류의 격타악기로 확정했다. 전문가는 2-5호‘장백산석경’은 조기 형태라고 추측, 제사를 지내고 악무행사중의 격타절주로 사용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다른 용도에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장백산 석경은‘편경(编磬)’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덧붙여 말한다.
이외 2017년 5월 17일, 장복유와 우아여, 림삼, 등수평 등이 돈화 강자유적지에서 한점의 석경을 발견했는데 구멍 변두리와 아래변이 약간 파손되였다. 이 석경도 전문가소조의 확인을 받았다.
‘장백산석경’1호/ 장복유 찍음
돈화시 강자유적지에서 발견한 석경 / 장복유 찍음
장복유의 소개에 따르면 2014년 10월 20일, 장복유가 장백산 서남비탈 송화강 상류에서 력사문화자원을 조사할 때 만강진 풍림촌에서 구석기시기의 손도끼를 발견, 진전가교수의 감정을 거쳐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년전의 도구로 인정되였다. 2015년 7월 7일, 장복유는 장백산관리위원회 지남구 구위 서기 조수청 등과 만강촌에 가 전야조사를 할 때 구멍이 있는 석기를 발견, 신석기시기의 물건임을 초보적으로 판단, 후에 ‘장백산석경’1호로 명명했다. 그후 만강진의 ‘눌은옛성(讷殷古城)’주변지역에서 련이어‘장백산석경’2-5호를 채집했다.
‘장백산석경’ 1호, 제일 먼저 발견한 우건/ 장복유 찍음
진전가교수는 ‘장백산석경’의 가치는 장복유가 발견한 ‘장백산손도끼’와 어깨를 겨룰수 있다고 하면서 석경의 기원, 장백산의 력사, 문화 연구에 중요한 실물증거를 제공했다고 인정했다.
전문가들의 소개에 따르면 우리 나라 고대에 팔음악기 분류법이 있다. 즉‘금(金),석(石),토(土),혁(革),사(丝),목(木),포(匏),죽(竹)’으로서 이중 ‘경(磬)’은 석류에 속한다. 경(磬)을 또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단독으로 된 큰 경이라 ‘특경(特磬)’이라고 부르며 다른 하나는 ‘편경(编磬)’이라 부른다 한다.
전문가들은 ‘장백산석경’과 돈화강자석경은 신석기시기의 것임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확실한 년대를 알려면 진일보로 되는 고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복유와 ‘장백산석경’ 1호/ 장희 찍음
알아본 데 의하면 ‘장백산석경’을 장백산지남구‘눌은박물관(讷殷博物馆)’의 ‘진관의 보물’로 삼고 공개 전시하기로 했다.
/ 사진 글 신화사 편역 /길림신문 홍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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